동기 동창
文奉志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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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2 08:37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한
뭉크미술 원장님이 보내주신 작품입니다.
제목 : 아서라
지은이 : 文奉志洪
제 2 화 : 동기 동창
**연기준**
눈을 뜨고 작은 방문을 열고 나오면
넓은 거실에서 보이는 주방탁자 위에 우유와 시리얼이 놓여 있다.
GOLDSTAR tv앞에 앉아 아침 드라마를 보면서
꼬마는 혼자 양치질을 했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노란 개나리꽃을 발차기로 떨어트리기를
수차례하면서 무심천 징검다리를 건너 아빠가 일 하는 곳으로
가는 동안에 노랑 유치원 차가 수도 없이 도로를 달리는 것을 본다.
유치원을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는 꼬마는 아침마다 엄마들이
손을 흔들며 아이들이 차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난 왜 엄마가 없어” 라고 물어 보았지만,
아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덕관이라고 써진 곳이 아빠가 일하는 일터다.
그곳에서 품세도 익히고 덤블링을 하면서
땀이 흐르게 운동을 하고 낮잠도 잔다.
오후 시간이 되면 어른들이 운동을 마치고
나누어 주는 우유와 간식을 받아먹으며 자랐다.
8살이 되었다. 아빠가 바빠 옆집 아줌마 손을 잡고
주성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우리 반은 여자 보다 남자 아이들이 12명이나 많았다.
키가 크고 미키마우스 그림이 한정판으로 찍힌 디즈니랜드
명품 잠바를 입은 연기준과 짝이 되었다.
나와 기준이는 10분 거리에 살았다.
둘은 엄마가 없고 가족도 없고 아빠는 늦게 까지 일을 했다.
바둑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 11시까지 체육관에서 운동을 했다.
아빠와 무심천 징검다리를 건너 기준이네 집을 들린 후에
우리 집으로 오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체육관에서는 모두가 아빠를 관장님이라고 불렀다.
아빠는 태권도 국기원 초대 관장님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훈장도 받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학기 초에 아빠는 허리를 다쳐
체육관을 후배에게 넘기면서 기준이는 학교에서 만 만났다.
우리 집은 주변 집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컸다.
800평 대저택에서 살면서 실직한 아빠는 적은 연금에 의지했다.
거지반 술값으로 다 탕진하여 생활은 형편없었다.
훗날 넓은 집터 덕분에 돈 걱정은 안 해도 됐지만,
그때는 아빠가 미웠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저녁을 먹기 전에
주전자를 들고 사직동 터미널 뒤쪽 술집에서 막걸리를 사와야 했다.
다른 요일은 문제가 없었지만, 토요일 오후가 되면
으슥한 곳에서 담배를 피우던 불량한 형들이
나타나 술심부름 하는 돈을 빼앗았다.
아빠에게 토요일은 형들이 돈을 빼앗아 막걸리 사러 못가니
슈퍼에서 막걸리를 사오겠다고 했다.
아빠는 맛이 틀리다면서 태권도 4단의 실력이 있는 네가
싸워보지도 않고 돈을 무조건 빼앗기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야단을 치셨다.
난 기준이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도움을 청했다.
주전자를 들고 술집으로 가면서 우리 둘은 엄마 얼굴도 알지 못하고
아빠 사랑도 못 받고 살았으니 불량한 형들을 상대로 싸우다
맞아 죽어도 둘은 도망가지 말자고 약속을 했다.
전봇대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던 형들이
우리에게 다가 와 통행세를 내라고 했다.
나와 기준이는 돈을 달라는 형들에게 없다고 했다.
4명 중 한 명이 내 주머니를 뒤져 돈이 나오면 100원에
뺨을 한 대 씩 맞아야 한다며 주머니를 만지려고 했다.
난 떨렸지만 한 명을 양손으로 밀치고 돌려차기를 하고나서
한명의 명치를 치고 뒤 돌려차기로 다른 한 명을 차버렸다.
놀란 나머지 2명이 뛰어오면서 우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유단자인 기준이와 난 체육관에서 빨간 띠를 맨 형들
서너 명과 대련한다는 기분으로 상대들을 때렸다.
너무 간단하게 이기자 둘은 자신감이 생겨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주전자를 앞뒤로 흔들면서 술심부름을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토요일이 왔다.
형들이 보복한다는 두려움으로 기준이에게 다시 도움을 청했다.
주전자를 든 손에 힘을 주고 한 손을 꽉 쥐고는
절대로 돈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기준이는 쌍절곤을 챙겨 허리에 숨겼다.
터미널을 돌자 눈앞이 깜깜하고 두려움에 심장이 뛰었다.
전봇대 밑에서 기다리는 형들은 10명이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던 한 형이 우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소리 내어 웃으면서 나에게 맞은 한 형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쳤다.
“씨 ~~~발 초딩이잖아.”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아이에게 맞는 다는 것이 창피하지 않냐?”
“나가 돼져라 , 자식아.”
10명중 가장 힘이 있어 보이는 형이 야유를 하더니
두 명의 형들에게 명령을 했다.
“야 너희 두 명이 저 자식들 데려와 무릎 꿇으라고 해.”
高자라고 써진 모자를 삐뚤게 쓰고 검은 교복바지를 수선해서
나팔거리게 만든 옷을 입은 형들이 다가왔다.
엄마도 없고 아빠마저 아픈 상황에서 친척도 없이
명절이면 늘 쓸쓸히 갈 곳 없어 혼자 보내야 했던 나와 기준이는
맞아 죽는 날이 오늘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갑자기 이왕 죽을 거라면 실컷 분이나 풀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형 한명의 면상을 앞 올려 내려치기로 찍자
욱 하더니 코피가 터졌다.
다른 한명을 주전자로 턱주가리를 날려 버렸다.
보고 있던 형들이 이 자식이 하더니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기준이가 쌍절곤을 꺼내 들고 옆차기를 하면서 휘두르자
세 명이 코피가 터졌다.
난 담벼락을 밟고 뛰어 오르면서 두 명의 면상을 차버렸다.
주전자로 다른 한 명의 안면을 강타하고 뒤이어 옆차기와
뒤 돌려차기를 하고 다시 주전자로 형의 낭심을 치고
정신없이 팔과 다리를 번갈아 움직였다.
기준이가 공중 뒤돌려 차기를 하면서
쌍절곤을 휘두르자 두 명이 쓰러져서는 소리 내어 울었다.
터미널 경비원과 경찰이 나타나 싸움질 하던 12명을 데리고
경찰서로 향했다.
상대방 부모들이 경찰서에 와서 신변인수 서에
서명을 하고 형들을 차례로 데리고 나갔다.
형사 한 분이 나에게 부모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편찮으신 아빠가 걱정되어 난 전화가 없다고 했다.
어른이 와야 경찰서를 나간 다는 말에 아빠가 운영하던
체육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새로운 관장님이 전화를 받고 30분 만에 도착했다.
형사들과 아는 사이인지 인사를 나누고 나서
나에게 와 물었다.
“정말 둘이서 10명의 형들을 저토록 아작을 냈단 말이냐?“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형편없이 구겨진 주전자를 보여주었다.
“ㅎㅎㅎ,” 형사와 관장님 모두가 웃었다.
누군가 한 명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훌륭한 경찰제목이구나 했다.
10명이 넘는 형들을 이기고 나서는 소문이 나 어떤 누구도
청주에서는 우리를 건들이지 않았다.
고 1이 되어 아빠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엄마와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준이가 아빠 장례를 함께 지켜주었다.
진로를 고심하다가 둘은 동국대학교 경찰학과를
나와 경찰 시험을 보고 청주로 발령을 받았다.
여주에서 유지광 장례식 때 타국에서 우리나라에 문상 온
각종 범죄조직이 코카인과 마약을 불법 유통시켰다.
기준이와 나는 범죄를 저지른 동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수사의 기본을 펼치기도 전에 무조건 잠복하고 수집하는
업무에 뛰어들었다.
부두목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불법으로 들어 온 357매그넘 탄환이
내 머리를 스쳤다. 기절한 나를 기준이는 팔과 다리에 총탄 3발을
맞으면서 지켜주었다.
그 후에도 내가 자살을 하려고 관자놀이에 총을 겨눌 때
또 다시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주었다.
처음에는 고맙다고 했다.
두 번째는 다시는 참견하지 말라고 했다.
여러 해 근무하는 동안 폭력과 납치 공포를 극복하면서
범죄현장을 누비고, 사망자의 부검을 참관하고, 살인자를
추적하면서 악질 범죄자를 수도 없이 검거했다.
대통령 선거 유세준비로 정신이 없던 9월
일주일에 세 건의 살인 사건이 청주에서 일어났다.
모두 검지와 중지가 절단 되어 사망한 사건이었다.
동료형사들이나 상사들에게 항상 심지가 굳고 강단 있기로
인정받은 연기준을 반장으로 특별수사팀이 꾸려졌다.
배테랑 형사 20명 모두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 때는
사건과 연관된 힘 있는 자가 경찰 고위 간부를 움직여
경찰은 약한 자들에게는 한없이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조직이라는 오명을 남길 줄 몰랐다.
(청소년 여러분 상상의 나래를 펴십시오)
뭉크미술 원장님이 보내주신 작품입니다.
제목 : 아서라
지은이 : 文奉志洪
제 2 화 : 동기 동창
**연기준**
눈을 뜨고 작은 방문을 열고 나오면
넓은 거실에서 보이는 주방탁자 위에 우유와 시리얼이 놓여 있다.
GOLDSTAR tv앞에 앉아 아침 드라마를 보면서
꼬마는 혼자 양치질을 했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노란 개나리꽃을 발차기로 떨어트리기를
수차례하면서 무심천 징검다리를 건너 아빠가 일 하는 곳으로
가는 동안에 노랑 유치원 차가 수도 없이 도로를 달리는 것을 본다.
유치원을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는 꼬마는 아침마다 엄마들이
손을 흔들며 아이들이 차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난 왜 엄마가 없어” 라고 물어 보았지만,
아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덕관이라고 써진 곳이 아빠가 일하는 일터다.
그곳에서 품세도 익히고 덤블링을 하면서
땀이 흐르게 운동을 하고 낮잠도 잔다.
오후 시간이 되면 어른들이 운동을 마치고
나누어 주는 우유와 간식을 받아먹으며 자랐다.
8살이 되었다. 아빠가 바빠 옆집 아줌마 손을 잡고
주성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우리 반은 여자 보다 남자 아이들이 12명이나 많았다.
키가 크고 미키마우스 그림이 한정판으로 찍힌 디즈니랜드
명품 잠바를 입은 연기준과 짝이 되었다.
나와 기준이는 10분 거리에 살았다.
둘은 엄마가 없고 가족도 없고 아빠는 늦게 까지 일을 했다.
바둑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 11시까지 체육관에서 운동을 했다.
아빠와 무심천 징검다리를 건너 기준이네 집을 들린 후에
우리 집으로 오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체육관에서는 모두가 아빠를 관장님이라고 불렀다.
아빠는 태권도 국기원 초대 관장님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훈장도 받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학기 초에 아빠는 허리를 다쳐
체육관을 후배에게 넘기면서 기준이는 학교에서 만 만났다.
우리 집은 주변 집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컸다.
800평 대저택에서 살면서 실직한 아빠는 적은 연금에 의지했다.
거지반 술값으로 다 탕진하여 생활은 형편없었다.
훗날 넓은 집터 덕분에 돈 걱정은 안 해도 됐지만,
그때는 아빠가 미웠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저녁을 먹기 전에
주전자를 들고 사직동 터미널 뒤쪽 술집에서 막걸리를 사와야 했다.
다른 요일은 문제가 없었지만, 토요일 오후가 되면
으슥한 곳에서 담배를 피우던 불량한 형들이
나타나 술심부름 하는 돈을 빼앗았다.
아빠에게 토요일은 형들이 돈을 빼앗아 막걸리 사러 못가니
슈퍼에서 막걸리를 사오겠다고 했다.
아빠는 맛이 틀리다면서 태권도 4단의 실력이 있는 네가
싸워보지도 않고 돈을 무조건 빼앗기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야단을 치셨다.
난 기준이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도움을 청했다.
주전자를 들고 술집으로 가면서 우리 둘은 엄마 얼굴도 알지 못하고
아빠 사랑도 못 받고 살았으니 불량한 형들을 상대로 싸우다
맞아 죽어도 둘은 도망가지 말자고 약속을 했다.
전봇대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던 형들이
우리에게 다가 와 통행세를 내라고 했다.
나와 기준이는 돈을 달라는 형들에게 없다고 했다.
4명 중 한 명이 내 주머니를 뒤져 돈이 나오면 100원에
뺨을 한 대 씩 맞아야 한다며 주머니를 만지려고 했다.
난 떨렸지만 한 명을 양손으로 밀치고 돌려차기를 하고나서
한명의 명치를 치고 뒤 돌려차기로 다른 한 명을 차버렸다.
놀란 나머지 2명이 뛰어오면서 우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유단자인 기준이와 난 체육관에서 빨간 띠를 맨 형들
서너 명과 대련한다는 기분으로 상대들을 때렸다.
너무 간단하게 이기자 둘은 자신감이 생겨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주전자를 앞뒤로 흔들면서 술심부름을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토요일이 왔다.
형들이 보복한다는 두려움으로 기준이에게 다시 도움을 청했다.
주전자를 든 손에 힘을 주고 한 손을 꽉 쥐고는
절대로 돈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기준이는 쌍절곤을 챙겨 허리에 숨겼다.
터미널을 돌자 눈앞이 깜깜하고 두려움에 심장이 뛰었다.
전봇대 밑에서 기다리는 형들은 10명이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던 한 형이 우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소리 내어 웃으면서 나에게 맞은 한 형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쳤다.
“씨 ~~~발 초딩이잖아.”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아이에게 맞는 다는 것이 창피하지 않냐?”
“나가 돼져라 , 자식아.”
10명중 가장 힘이 있어 보이는 형이 야유를 하더니
두 명의 형들에게 명령을 했다.
“야 너희 두 명이 저 자식들 데려와 무릎 꿇으라고 해.”
高자라고 써진 모자를 삐뚤게 쓰고 검은 교복바지를 수선해서
나팔거리게 만든 옷을 입은 형들이 다가왔다.
엄마도 없고 아빠마저 아픈 상황에서 친척도 없이
명절이면 늘 쓸쓸히 갈 곳 없어 혼자 보내야 했던 나와 기준이는
맞아 죽는 날이 오늘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갑자기 이왕 죽을 거라면 실컷 분이나 풀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형 한명의 면상을 앞 올려 내려치기로 찍자
욱 하더니 코피가 터졌다.
다른 한명을 주전자로 턱주가리를 날려 버렸다.
보고 있던 형들이 이 자식이 하더니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기준이가 쌍절곤을 꺼내 들고 옆차기를 하면서 휘두르자
세 명이 코피가 터졌다.
난 담벼락을 밟고 뛰어 오르면서 두 명의 면상을 차버렸다.
주전자로 다른 한 명의 안면을 강타하고 뒤이어 옆차기와
뒤 돌려차기를 하고 다시 주전자로 형의 낭심을 치고
정신없이 팔과 다리를 번갈아 움직였다.
기준이가 공중 뒤돌려 차기를 하면서
쌍절곤을 휘두르자 두 명이 쓰러져서는 소리 내어 울었다.
터미널 경비원과 경찰이 나타나 싸움질 하던 12명을 데리고
경찰서로 향했다.
상대방 부모들이 경찰서에 와서 신변인수 서에
서명을 하고 형들을 차례로 데리고 나갔다.
형사 한 분이 나에게 부모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편찮으신 아빠가 걱정되어 난 전화가 없다고 했다.
어른이 와야 경찰서를 나간 다는 말에 아빠가 운영하던
체육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새로운 관장님이 전화를 받고 30분 만에 도착했다.
형사들과 아는 사이인지 인사를 나누고 나서
나에게 와 물었다.
“정말 둘이서 10명의 형들을 저토록 아작을 냈단 말이냐?“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형편없이 구겨진 주전자를 보여주었다.
“ㅎㅎㅎ,” 형사와 관장님 모두가 웃었다.
누군가 한 명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훌륭한 경찰제목이구나 했다.
10명이 넘는 형들을 이기고 나서는 소문이 나 어떤 누구도
청주에서는 우리를 건들이지 않았다.
고 1이 되어 아빠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엄마와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준이가 아빠 장례를 함께 지켜주었다.
진로를 고심하다가 둘은 동국대학교 경찰학과를
나와 경찰 시험을 보고 청주로 발령을 받았다.
여주에서 유지광 장례식 때 타국에서 우리나라에 문상 온
각종 범죄조직이 코카인과 마약을 불법 유통시켰다.
기준이와 나는 범죄를 저지른 동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수사의 기본을 펼치기도 전에 무조건 잠복하고 수집하는
업무에 뛰어들었다.
부두목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불법으로 들어 온 357매그넘 탄환이
내 머리를 스쳤다. 기절한 나를 기준이는 팔과 다리에 총탄 3발을
맞으면서 지켜주었다.
그 후에도 내가 자살을 하려고 관자놀이에 총을 겨눌 때
또 다시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주었다.
처음에는 고맙다고 했다.
두 번째는 다시는 참견하지 말라고 했다.
여러 해 근무하는 동안 폭력과 납치 공포를 극복하면서
범죄현장을 누비고, 사망자의 부검을 참관하고, 살인자를
추적하면서 악질 범죄자를 수도 없이 검거했다.
대통령 선거 유세준비로 정신이 없던 9월
일주일에 세 건의 살인 사건이 청주에서 일어났다.
모두 검지와 중지가 절단 되어 사망한 사건이었다.
동료형사들이나 상사들에게 항상 심지가 굳고 강단 있기로
인정받은 연기준을 반장으로 특별수사팀이 꾸려졌다.
배테랑 형사 20명 모두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 때는
사건과 연관된 힘 있는 자가 경찰 고위 간부를 움직여
경찰은 약한 자들에게는 한없이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조직이라는 오명을 남길 줄 몰랐다.
(청소년 여러분 상상의 나래를 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