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인사 안녕
文奉志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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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9
2021.03.21 14:16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길벗님의 작품입니다.
제목; 안녕이라고 말 하지 마. <**연재소설**>
지은이 : 서울바른플란트 (文奉志洪)
제 102 화 : 아침 인사 안녕
전화를 건 소망이가 안녕이라는 말 대신
뉴스 이야기를 했다.
“응 무슨 뉴스”(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이란대사 가족사망뉴스가 나오자 머릿속이 하얗고 멍했다.
혜민은?
설마?
정말 혜민이 죽었다면...
이제 돌아가면 사부와 제자가 아닌 공주와 장군으로 채팅해요.
라는 글이 낭랑한 목소리가 되어 들려온다.
장우는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린다.
<어김없는 현실의 주검이 장우를 외롭게 한다>
꿈에 따라 해석은 다르다.
악몽을 길조로 풀어주는 넉넉한 인심의 사람이 있나하면,
길조를 시기하여 꿈은 반대라고 으름장을 놓고
상대의 풀을 꺾는 묘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꿈의 당사자가 해석을 듣고 웃으며
꿈을 지우거나 마음에 담아 꿈을 지우지 못했을 때의 차이는
엄청난 불행과 상상하기도 힘든 행복의 문을
열게 하는 꿈의 유희에 빠지게 된다.
장우는 전자와 후자도 아닌
꿈을 가장 잘 기억하는 천상의 신분을 가진 이승의 사람이다.
“장우야,
장우야, 장우야”
내던져 진 휴대폰에서 소망이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방안의 적막은 시끄러운 뉴스를 전하는 TV와는 전혀 다른
절망과 외로운 공간으로 가득 찬다.
장우는 문지기 악몽이 왜 자신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는지를 알았다.
자신이 범한 천기누설이 엄청난 재앙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구를 사모한다는 것, 누구를 위한 다는 것,
누구를 안 다는 것, 누구를 지킨다는 것,
누구를 기억하며 대신 한다는 것, 누구를 위한 생명을 준다는 것,
내 모든 아픔과 슬픔 위에 절망과 죽음이 엄습하여 가증되어 괴롭히고,
환희와 희망을 빼앗고 미소마저 짓밟는다 해도
내게서 누군가를 가져간다는 형벌보다
더 큰 천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외롭고 의지할 곳 없고,
배고파 신음하며 갈 곳 몰라 방황하다 쓰러질 때,
내가 말 할 상대 없이 방종하며
허전하여 허공을 우러러 탄식조차 삼키실 제,
내게서 누군가의 미소조차 볼 수 없도록 가져간다는
형벌보다 더 큰 천벌이 있을 수야?
내가 듣고자 찾아 나설 때, 내가 가면 항상 있던 곳에...
내 마음 속에 담아 나만 간직 하던 추억의 동산도
누군가가 먼 곳에 계심 때문인데...
내게서 누군가 존재한다는 자체를 없애버리는
형벌보다 더 큰 천벌을 내릴 수야?
“장우야, 장우야, 장우야 ”
좁은 방안에 핸드폰에서 들리는 소망의 소리로 꽉 찬다.
장우는 벽에 기대어 서서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벽을 타고 주저앉는다.
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나?
무엇을 기대하는 걸가?
내가 흘리는 눈물은 누구에게 보이려 하는 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외로움과 함께 하며 눈물 흘렸는데,
지금의 눈물은 어떤 의미를
간직한 눈물인가?
(뜨거운 눈물이, 뜨거운 눈물이 뺨에서 떨어져 가슴을 타고 흐른다)
소망은 핸드폰을 닫고
헝클어진 머리에 바지를 입고 장우 집을 향해 내달린다.
바보 , 바보, 사내가 강해야지/
사람이 살면서 죽는 것을 수없이 겪는 거야/ 바보/
대문을 열고는
“장우야”하며 장우의 방문을 열었다.
초췌한 모습의 장우가 벽에 기대어 휑하니
소망을 보고는 눈물을 닦는다.
소망은 TV를 끄고
<뚜뚜>하는 핸드폰 폴더를 닫고는 장우 앞에 마주 앉아
초점 없는 장우의 눈을 응시하고는, “장우야 이러지마, 우리 나가자”
“소망아 고맙다. 항상 내가 외롭거나 슬플 때 너를 찾아 갔는데,
오늘은 네가 나를 찾아 와
위로할 정도로 내가 나약하고 뻔뻔한 모습을 보인거지“
“그런 말하지 마, 언제 내가 너 모른척하며 생색낸 적 있니?”
“소망아 너하고 함께한 모든 시간이 너무나 행복 했어”
“너 답지 않게 무슨 소리야?”
“소망아 나 혼자 이대로 놔두고 가주라/”
“싫어”
...
...
“소망아, 너한테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제발 가주라/”
“싫어”
...
...
“소망아, 네가 나의 마지막 희망인 거야.
네가 아프면 , 네가 슬프면, 네가 괴로우면,
난 견딜 수 없어, 그러니 가 /“
“흑 흑 싫어, 네 대신 내가 아프고 , 네 대신 내가 괴로워 해주고 싶어”
“장우야 나 보고 가란 말 하지 마<흑 흑>”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길벗님의 작품입니다.
제목; 안녕이라고 말 하지 마. <**연재소설**>
지은이 : 서울바른플란트 (文奉志洪)
제 102 화 : 아침 인사 안녕
전화를 건 소망이가 안녕이라는 말 대신
뉴스 이야기를 했다.
“응 무슨 뉴스”(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이란대사 가족사망뉴스가 나오자 머릿속이 하얗고 멍했다.
혜민은?
설마?
정말 혜민이 죽었다면...
이제 돌아가면 사부와 제자가 아닌 공주와 장군으로 채팅해요.
라는 글이 낭랑한 목소리가 되어 들려온다.
장우는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린다.
<어김없는 현실의 주검이 장우를 외롭게 한다>
꿈에 따라 해석은 다르다.
악몽을 길조로 풀어주는 넉넉한 인심의 사람이 있나하면,
길조를 시기하여 꿈은 반대라고 으름장을 놓고
상대의 풀을 꺾는 묘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꿈의 당사자가 해석을 듣고 웃으며
꿈을 지우거나 마음에 담아 꿈을 지우지 못했을 때의 차이는
엄청난 불행과 상상하기도 힘든 행복의 문을
열게 하는 꿈의 유희에 빠지게 된다.
장우는 전자와 후자도 아닌
꿈을 가장 잘 기억하는 천상의 신분을 가진 이승의 사람이다.
“장우야,
장우야, 장우야”
내던져 진 휴대폰에서 소망이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방안의 적막은 시끄러운 뉴스를 전하는 TV와는 전혀 다른
절망과 외로운 공간으로 가득 찬다.
장우는 문지기 악몽이 왜 자신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는지를 알았다.
자신이 범한 천기누설이 엄청난 재앙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구를 사모한다는 것, 누구를 위한 다는 것,
누구를 안 다는 것, 누구를 지킨다는 것,
누구를 기억하며 대신 한다는 것, 누구를 위한 생명을 준다는 것,
내 모든 아픔과 슬픔 위에 절망과 죽음이 엄습하여 가증되어 괴롭히고,
환희와 희망을 빼앗고 미소마저 짓밟는다 해도
내게서 누군가를 가져간다는 형벌보다
더 큰 천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외롭고 의지할 곳 없고,
배고파 신음하며 갈 곳 몰라 방황하다 쓰러질 때,
내가 말 할 상대 없이 방종하며
허전하여 허공을 우러러 탄식조차 삼키실 제,
내게서 누군가의 미소조차 볼 수 없도록 가져간다는
형벌보다 더 큰 천벌이 있을 수야?
내가 듣고자 찾아 나설 때, 내가 가면 항상 있던 곳에...
내 마음 속에 담아 나만 간직 하던 추억의 동산도
누군가가 먼 곳에 계심 때문인데...
내게서 누군가 존재한다는 자체를 없애버리는
형벌보다 더 큰 천벌을 내릴 수야?
“장우야, 장우야, 장우야 ”
좁은 방안에 핸드폰에서 들리는 소망의 소리로 꽉 찬다.
장우는 벽에 기대어 서서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벽을 타고 주저앉는다.
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나?
무엇을 기대하는 걸가?
내가 흘리는 눈물은 누구에게 보이려 하는 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외로움과 함께 하며 눈물 흘렸는데,
지금의 눈물은 어떤 의미를
간직한 눈물인가?
(뜨거운 눈물이, 뜨거운 눈물이 뺨에서 떨어져 가슴을 타고 흐른다)
소망은 핸드폰을 닫고
헝클어진 머리에 바지를 입고 장우 집을 향해 내달린다.
바보 , 바보, 사내가 강해야지/
사람이 살면서 죽는 것을 수없이 겪는 거야/ 바보/
대문을 열고는
“장우야”하며 장우의 방문을 열었다.
초췌한 모습의 장우가 벽에 기대어 휑하니
소망을 보고는 눈물을 닦는다.
소망은 TV를 끄고
<뚜뚜>하는 핸드폰 폴더를 닫고는 장우 앞에 마주 앉아
초점 없는 장우의 눈을 응시하고는, “장우야 이러지마, 우리 나가자”
“소망아 고맙다. 항상 내가 외롭거나 슬플 때 너를 찾아 갔는데,
오늘은 네가 나를 찾아 와
위로할 정도로 내가 나약하고 뻔뻔한 모습을 보인거지“
“그런 말하지 마, 언제 내가 너 모른척하며 생색낸 적 있니?”
“소망아 너하고 함께한 모든 시간이 너무나 행복 했어”
“너 답지 않게 무슨 소리야?”
“소망아 나 혼자 이대로 놔두고 가주라/”
“싫어”
...
...
“소망아, 너한테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제발 가주라/”
“싫어”
...
...
“소망아, 네가 나의 마지막 희망인 거야.
네가 아프면 , 네가 슬프면, 네가 괴로우면,
난 견딜 수 없어, 그러니 가 /“
“흑 흑 싫어, 네 대신 내가 아프고 , 네 대신 내가 괴로워 해주고 싶어”
“장우야 나 보고 가란 말 하지 마<흑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