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한 사람들
文奉志洪
4
911
2021.10.15 19:44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
행복신님이 보내주신 작품입니다.
네이버검색 : 서울바른플란트 청소년의방
제목 : 황혼. <**연재소설**>
지은이 : 文奉志洪
제 33 화 ;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
용암사는 감로수가 일품이라 했다.
방황하는 자아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을 이르는
과정을 소 길들이는 10단계의 그림으로 그린
십우도를 보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노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이라는 문구가 생각나자
달수는 갈증을 느낀다.
대웅전 어디에도 인기척이 없다.
스님을 찾아 별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사채에 겨우내 처마에 매달아 놓은 시래기와 말린 호박이
작은 바람에 흔들리며 정겹게 맞아 주는 곳으로 향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오는 주지 스님을 만난 달수는
스님을 따라 합장 인사를 나누고 나서 사람을 찾으러 왔다는
말을 하고는 주지스님 방으로 가 곡차를 놓고 마주 앉았다.
이영주라는 분을 찾는다고 하면서 가져간 등본을 보여주었다.
스님은 자신이 부임하기 전 일이라 잘 기억을 못 한다면서
마을 초입에서 슈퍼를 운영 하시는 분이 용암사 법우로
30년 넘게 공양을 하시니 내려가는 길에 들려 보라고 했다.
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기와집 밑으로 미닫이문
유리에 슈퍼와 담배라고 써진 문구를 보고 차를 멈췄다.
달수는 한산도 담배 한 갑과 오렌지 주스 값을 계산하고
나이 많은 여자 분에게 말을 걸었다.
“용암사 주지 스님을 뵙고 내려오는 길입니다.”
“법우님께 궁금한 것이 있어 묻고 싶습니다.”
오가는 사람이 적어서 말 상대가 없던 차에 반갑다는
표정으로 중년을 넘은 여인은 말을 살갑게 받았다.
“무엇이던 물어 보소, 내가 용암사에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몸담고 있응게.“
“예, 제가 사람을 찾는데 이영주라는 분을 아시는지요.”
여인은 달수를 찬찬히 살폈다.
“암, 알지 헌데 댁은 뉘시오?”
달수는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제가 가족의 부탁으로 이영주라는 사람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영주 가족은 내가 다 아는데 누구 부탁이요?”
“그게 , 좀...”
“나도 그럼 말 못하지.”
달수는 여인이 이영주를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예, 이영주님의 아들 부탁입니다.”
“ㅎㅎㅎ“
“호호 하하하”
여인은 호탕하게 웃고 나서 말했다.
“경찰도 별거 아니구만, 뻥을 치게
영주 이모는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네.”
여인은 계속 웃으면서 자신이 이영주의 조카라고 했다.
자신의 엄마가 이영주의 언니라면서 지난 이야기를 했다.
너무나 가난했던 할아버지는 이모를 용암사에 보내
허드레 일을 하면서 밥을 얻어먹으라고 했다.
심성이 착하고 부지런한 이모는 참모 일을 하면서 절 음식에
두각을 나타내 공주 익산 청주까지 소문이 났다.
어느 날 청주 갑부가 할아버지에게 많은 돈을 주고 이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집 안 일을 시키겠다고 했다.
청주로 간 후에 40년 동안 한 번도 강경에 나타나지 않았던 이모가
용암사에 오신 지 6개월 만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신고를 하려고 보니 주소지에 자식 같은 나이의 남편이 있었다.
남편(세종)이라는 분을 만나 보니 이모(영주)와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서류상 부부로 되어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청주 갑부 차태식이 돈으로 강세종 이라는 사람과
이모를 법적으로 엮어 놓았는데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남편이라는 사람과 조카인 자신도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사망신고를 마치고
만날 이유가 없어 지금까지 연락 안 하고 살고 있다고 했다.
청주로 차를 몰면서 용암사 벽화에 그려진 십우도를 떠올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을 갖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 날 까 두렵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종교가 없는 자신이 세상 만물의 조화를 깨우치지는 못했어도
철중 선배를 생각 할수록 형제도 없고 친척도 없고
더구나 엄마를 본적도 없이 기구한 운명을 사는 것이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에 혀를 찼다.
달수는 경찰서로 돌아와 호적에 있는 시중, 주성, 소영과
주민등록에 기재 된 차영란의 이름을 차례로 검색했다.
시중은 대전에서 정신과 의사로 명성이 자자했고,
주성은 조치원에서 내과 의사로 자리를 잡았다.
차영란 이라는 이름은 8명이 나왔다.
그중 3명은 40대 미만이라 제외했다. 4명에게 전화를 하고
대화를 한 결과 철중 선배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거푸 전화를 해도 한 명은 끝내 받지를 않았다.
시중과 주성은 진료하느라 전화 통화가 쉽지 않아
현역 국회의원 강소영 이라는 분에게 전화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나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자 허락을 했다.
대전 유천동 작은 단독 집 초인종을 눌렀다.
주름이 많은 얼굴이지만 곱고 세련된 여자 분이
흰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오라면서 옆으로 비켜주었다.
나무를 잘라 썩지 말라고 불로 나무껍질을 태워 잔디 사이에
묻어 발 디딤돌로 사용하게 한 징검다리 식 나무 판을 밟고
열린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소박한 갈색 소파가 보였다.
여인은 앉으라고 하면서 찻잔에 시원한 오미자차를 받쳐왔다.
흰색의 정갈한 거실 한쪽 벽은 서재를 연상케 하는 책장에
법률 서적이 가득했다.
책장 정 가운데는 책 대신 작은 액자에 남자 셋과
여인 둘이 다정히 웃으며 찍은 사진이 있다.
그중 한명이 자신이 오늘 만나는 소영을 닮았다.
달수가 사진을 유심히 보고 있자,
“여자 둘 중에 한명이
저랍니다. 제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습니까?“
달수는 호적등본을 여인에게 보여주었다.
여인은 숙달된 동작으로 등본을 보더니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강원장의 고아원은 양 부모가 사고로 사망하거나
이혼 등으로 호적이 확실한 아이들을 정부의 후원으로 보호 하다가
19세가 되면 독립을 시키는 기관 이었다.
고아원과 다르게 출생을 알 수 없는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는
입양기관도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사건이 보도되었다.
우리나라가 아이를 외국에
입양시키는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시민권을 받지 못해
성인이 되어 강제추방 된다는 것이 알려져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강원장은 친구가 운영하는 입양기관의 부탁으로 외국으로 입양을
보내지 못하는 3명의 남자와 여자 1명을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입양사건으로 냉랭해진 분위기는 전국 고아원 후원자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해 생활이 어려워졌다.
아이들이 성장해 대학에 진학하자 등록금으로 어려움을 겪던 원장님은
고아원 부지를 담보로 빚을 지게 되었다.
4년이 되기도 전에 고아원 부지를 경매로 넘겨야했다.
4명의 아이들을 위해 공사장도 다니고,
청주 갑부의 논과 밭을 가꾸면서 선자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양아버지는 내색 하지 않고 두 명은 의사 한 명은 체육인
자신은 판사로 만들었다고 했다.
판사였다는 말을 들은 달수는 수사 중인 사건이라 자세히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세종이라는 분과 연관 되어진 사건 같아 찾아
뵈었다고 하면서 단서가 호적등본과 차영란 이라면서 기억나는
것이 있으면 도움을 바란다고 했다.
적은 수사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경찰들의 고충을 아는 전직 판사는
지그시 눈을 감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아마 우리 모두는 사랑 받지 못한 사람들 이었을 겁니다.”
“고아인 우리나, 부모가 있어 부족함 없는 영란이나 ”
영란 이라는 이름에
달수는 정신이 바짝 들어 전직 판사의 말을 잘랐다.
“영란이라구 말씀 하셨나요?”
“혹시 제가 찾으려 하는 차영란을 말하시는 건지요 .”
판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저 사진에 있는 내 옆의 여자가
차영란입니다.“
행복신님이 보내주신 작품입니다.
네이버검색 : 서울바른플란트 청소년의방
제목 : 황혼. <**연재소설**>
지은이 : 文奉志洪
제 33 화 ;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
용암사는 감로수가 일품이라 했다.
방황하는 자아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을 이르는
과정을 소 길들이는 10단계의 그림으로 그린
십우도를 보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노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이라는 문구가 생각나자
달수는 갈증을 느낀다.
대웅전 어디에도 인기척이 없다.
스님을 찾아 별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사채에 겨우내 처마에 매달아 놓은 시래기와 말린 호박이
작은 바람에 흔들리며 정겹게 맞아 주는 곳으로 향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오는 주지 스님을 만난 달수는
스님을 따라 합장 인사를 나누고 나서 사람을 찾으러 왔다는
말을 하고는 주지스님 방으로 가 곡차를 놓고 마주 앉았다.
이영주라는 분을 찾는다고 하면서 가져간 등본을 보여주었다.
스님은 자신이 부임하기 전 일이라 잘 기억을 못 한다면서
마을 초입에서 슈퍼를 운영 하시는 분이 용암사 법우로
30년 넘게 공양을 하시니 내려가는 길에 들려 보라고 했다.
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기와집 밑으로 미닫이문
유리에 슈퍼와 담배라고 써진 문구를 보고 차를 멈췄다.
달수는 한산도 담배 한 갑과 오렌지 주스 값을 계산하고
나이 많은 여자 분에게 말을 걸었다.
“용암사 주지 스님을 뵙고 내려오는 길입니다.”
“법우님께 궁금한 것이 있어 묻고 싶습니다.”
오가는 사람이 적어서 말 상대가 없던 차에 반갑다는
표정으로 중년을 넘은 여인은 말을 살갑게 받았다.
“무엇이던 물어 보소, 내가 용암사에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몸담고 있응게.“
“예, 제가 사람을 찾는데 이영주라는 분을 아시는지요.”
여인은 달수를 찬찬히 살폈다.
“암, 알지 헌데 댁은 뉘시오?”
달수는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제가 가족의 부탁으로 이영주라는 사람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영주 가족은 내가 다 아는데 누구 부탁이요?”
“그게 , 좀...”
“나도 그럼 말 못하지.”
달수는 여인이 이영주를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예, 이영주님의 아들 부탁입니다.”
“ㅎㅎㅎ“
“호호 하하하”
여인은 호탕하게 웃고 나서 말했다.
“경찰도 별거 아니구만, 뻥을 치게
영주 이모는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네.”
여인은 계속 웃으면서 자신이 이영주의 조카라고 했다.
자신의 엄마가 이영주의 언니라면서 지난 이야기를 했다.
너무나 가난했던 할아버지는 이모를 용암사에 보내
허드레 일을 하면서 밥을 얻어먹으라고 했다.
심성이 착하고 부지런한 이모는 참모 일을 하면서 절 음식에
두각을 나타내 공주 익산 청주까지 소문이 났다.
어느 날 청주 갑부가 할아버지에게 많은 돈을 주고 이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집 안 일을 시키겠다고 했다.
청주로 간 후에 40년 동안 한 번도 강경에 나타나지 않았던 이모가
용암사에 오신 지 6개월 만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신고를 하려고 보니 주소지에 자식 같은 나이의 남편이 있었다.
남편(세종)이라는 분을 만나 보니 이모(영주)와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서류상 부부로 되어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청주 갑부 차태식이 돈으로 강세종 이라는 사람과
이모를 법적으로 엮어 놓았는데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남편이라는 사람과 조카인 자신도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사망신고를 마치고
만날 이유가 없어 지금까지 연락 안 하고 살고 있다고 했다.
청주로 차를 몰면서 용암사 벽화에 그려진 십우도를 떠올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을 갖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 날 까 두렵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종교가 없는 자신이 세상 만물의 조화를 깨우치지는 못했어도
철중 선배를 생각 할수록 형제도 없고 친척도 없고
더구나 엄마를 본적도 없이 기구한 운명을 사는 것이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에 혀를 찼다.
달수는 경찰서로 돌아와 호적에 있는 시중, 주성, 소영과
주민등록에 기재 된 차영란의 이름을 차례로 검색했다.
시중은 대전에서 정신과 의사로 명성이 자자했고,
주성은 조치원에서 내과 의사로 자리를 잡았다.
차영란 이라는 이름은 8명이 나왔다.
그중 3명은 40대 미만이라 제외했다. 4명에게 전화를 하고
대화를 한 결과 철중 선배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거푸 전화를 해도 한 명은 끝내 받지를 않았다.
시중과 주성은 진료하느라 전화 통화가 쉽지 않아
현역 국회의원 강소영 이라는 분에게 전화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나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자 허락을 했다.
대전 유천동 작은 단독 집 초인종을 눌렀다.
주름이 많은 얼굴이지만 곱고 세련된 여자 분이
흰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오라면서 옆으로 비켜주었다.
나무를 잘라 썩지 말라고 불로 나무껍질을 태워 잔디 사이에
묻어 발 디딤돌로 사용하게 한 징검다리 식 나무 판을 밟고
열린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소박한 갈색 소파가 보였다.
여인은 앉으라고 하면서 찻잔에 시원한 오미자차를 받쳐왔다.
흰색의 정갈한 거실 한쪽 벽은 서재를 연상케 하는 책장에
법률 서적이 가득했다.
책장 정 가운데는 책 대신 작은 액자에 남자 셋과
여인 둘이 다정히 웃으며 찍은 사진이 있다.
그중 한명이 자신이 오늘 만나는 소영을 닮았다.
달수가 사진을 유심히 보고 있자,
“여자 둘 중에 한명이
저랍니다. 제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습니까?“
달수는 호적등본을 여인에게 보여주었다.
여인은 숙달된 동작으로 등본을 보더니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강원장의 고아원은 양 부모가 사고로 사망하거나
이혼 등으로 호적이 확실한 아이들을 정부의 후원으로 보호 하다가
19세가 되면 독립을 시키는 기관 이었다.
고아원과 다르게 출생을 알 수 없는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는
입양기관도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사건이 보도되었다.
우리나라가 아이를 외국에
입양시키는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시민권을 받지 못해
성인이 되어 강제추방 된다는 것이 알려져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강원장은 친구가 운영하는 입양기관의 부탁으로 외국으로 입양을
보내지 못하는 3명의 남자와 여자 1명을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입양사건으로 냉랭해진 분위기는 전국 고아원 후원자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해 생활이 어려워졌다.
아이들이 성장해 대학에 진학하자 등록금으로 어려움을 겪던 원장님은
고아원 부지를 담보로 빚을 지게 되었다.
4년이 되기도 전에 고아원 부지를 경매로 넘겨야했다.
4명의 아이들을 위해 공사장도 다니고,
청주 갑부의 논과 밭을 가꾸면서 선자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양아버지는 내색 하지 않고 두 명은 의사 한 명은 체육인
자신은 판사로 만들었다고 했다.
판사였다는 말을 들은 달수는 수사 중인 사건이라 자세히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세종이라는 분과 연관 되어진 사건 같아 찾아
뵈었다고 하면서 단서가 호적등본과 차영란 이라면서 기억나는
것이 있으면 도움을 바란다고 했다.
적은 수사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경찰들의 고충을 아는 전직 판사는
지그시 눈을 감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아마 우리 모두는 사랑 받지 못한 사람들 이었을 겁니다.”
“고아인 우리나, 부모가 있어 부족함 없는 영란이나 ”
영란 이라는 이름에
달수는 정신이 바짝 들어 전직 판사의 말을 잘랐다.
“영란이라구 말씀 하셨나요?”
“혹시 제가 찾으려 하는 차영란을 말하시는 건지요 .”
판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저 사진에 있는 내 옆의 여자가
차영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