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文奉志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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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5 09:31

희망은 기대만으로도 마음이 부푼다며
뭉크미술원장님이 보내주신 작품입니다.
제목 : 아서라
지은이 : 文奉志洪
제 13 화 : 시절인연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경찰서를 나왔다.
비취빛 하늘에 끌려 배낭을 꾸려 길을 나서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철중은 마치 약속시간이 지난 사람처럼
서둘러 차를 몰아 수암골을 찾았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용의자도 아니지만,
골목으로 사라진 여인을 생각하면 미모에 끌려
현장지원 중에 신분 검문도 없이 처음 본 사람을
사건현장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형사배지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더욱 창피했다.
카페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예의상 냉커피를 주문해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손에 들고 나왔다.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여인이 사라진 골목 초입에서
부터 충북대학 미대생 서너 명이 여기저기 흩어져
벽에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갈색으로 염색을 한 여인이
학생들을 지시하며 손짓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빨간 스웨터에 회색 롱스커트를 입었다.
파레트를 들더니 붉은 달을 크게 그린 벽 앞에서
푸른색과 보라색을 섞어 하늘을 나는 융단에 앉아 있는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를 집중해서 그리고 있다.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밝고 명랑한 보라색이
철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다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푸른색과 보라색의 조화가 너무 경이롭습니다.
바라만 보아도 양탄자에 앉은 두 사람의 사랑이 느껴지고
색을 입히는 사람의 섬세한 터치가 두 사람을
언제까지라도 헤어지지 않게 마술을 걸어두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던 여인이 철중을 힐끗 처다 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나이를 먹게 되면 안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점점 확신을 잃고 실망이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건 현실이 아닌 픽션입니다.”
여인이 붓을 물에 헹구는 동안에
철중이 빠르게 답을 했다.
“픽션은 현실을 기초해서 창조 된 것 아닌가요?”
“...”
철중이 바라보는 여인은 짙은 보라색에 약간의 흰색을
첨가하면서 철중을 천천히 살폈다.
크고 검은 눈동자에 도발적인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 아래로 목선을 타고 V자형으로 파진 곳에
우유 빛 피부가 보였다.
철중은 뇌쇄적인 여인의 네크라인에 정신을 빼앗겼다.
“외모로는 그림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그림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 하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철중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면서 스스로 놀랬다.
그림을 그리는 여동생이 있다는 철중의 말을 듣고 난 여인은
긴장을 풀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림과 사랑은 쉽게 만들어 지는 가벼운 것이 아니죠.
“그림과 사랑은 절대로 거저 얻어지지 않는 답니다.
그림과 사랑은 거저 얻는 게 아니라, 노력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조금 전 알라딘과 자스민의 사랑을 이야기 하셨죠.
그림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랍니다.“
여인은 물감이 마른 것을 확인하고 짙은 푸른색과 보라색
가장자리에 흰색을 섞은 보라색을 살짝 덧입혀 바람에
양탄자가 날아오르려고 일렁이는 모습을 창조해냈다.
“사람들은 좋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작가의 숨은 의도나 주인공의 깊은 마음을 못 보는 거죠.
더 사랑해주지 못했고...
더 이해해주지 못했고...
더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모르는 채
좋고 아름다운 것만 보려고 한답니다.“
여인은 말을 멈추고,
그림에 집중한다.
흰색이 입혀지고 노량색이 입혀지고
맑고 밝은 알라딘과 공주의 모습이 그려졌다.
램프가 황금색으로 빛을 밝혔다.
철중은 그림속 주인공 둘이 함께 늙어 가리라 생각한다.
철중은 눈앞에 펼쳐진 그림에 취한다.
지신도 모르게 보고 있는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상상 속에 펼쳐진 그림에서는 알라딘과 자스민은 없다.
그림 그리는 저 여인과 내가 주인공이 되어 함께 늙어 간다면...
그림은 마술이 되어
철중을 사로잡아 엉뚱한 꿈을 꾸게 한다.
그림에 열중하는 여인이 더 이상 말이 없자 철중은
카페에서 들고 나온 커피를 여인의 물감 옆에 놓았다.
“햇살이 강 한데 수고 하십시오.
이것은 저 카페에서 지금 사 가지고 나온 그대로입니다. 드십시오.“
철중을 쳐다보는 여인은 긴 갈색머리에 커다란 검은 눈동자를
껌뻑이더니 다시 색감을 입히는 작업에 몰입 했다.
골목을 들어서면서 문이 열린 이집 저집을 들여다보았다.
며칠 전 여인을 만났으면 하는 막연한 발길을 한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카페 쪽으로 오자 벽화가 완성되어 있었다.
빈 커피 잔을 높이 들어 보이는 여인이
철중에게 고맙다는 표현으로 천천히 목례를 했다.
철중도 고개를 조금 숙여 답례를 하고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억지로 운전을 하고 형사과로 들어섰는데
몸이 한쪽으로만 쏠리면서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뭉크미술원장님이 보내주신 작품입니다.
제목 : 아서라
지은이 : 文奉志洪
제 13 화 : 시절인연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경찰서를 나왔다.
비취빛 하늘에 끌려 배낭을 꾸려 길을 나서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철중은 마치 약속시간이 지난 사람처럼
서둘러 차를 몰아 수암골을 찾았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용의자도 아니지만,
골목으로 사라진 여인을 생각하면 미모에 끌려
현장지원 중에 신분 검문도 없이 처음 본 사람을
사건현장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형사배지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더욱 창피했다.
카페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예의상 냉커피를 주문해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손에 들고 나왔다.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여인이 사라진 골목 초입에서
부터 충북대학 미대생 서너 명이 여기저기 흩어져
벽에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갈색으로 염색을 한 여인이
학생들을 지시하며 손짓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빨간 스웨터에 회색 롱스커트를 입었다.
파레트를 들더니 붉은 달을 크게 그린 벽 앞에서
푸른색과 보라색을 섞어 하늘을 나는 융단에 앉아 있는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를 집중해서 그리고 있다.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밝고 명랑한 보라색이
철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다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푸른색과 보라색의 조화가 너무 경이롭습니다.
바라만 보아도 양탄자에 앉은 두 사람의 사랑이 느껴지고
색을 입히는 사람의 섬세한 터치가 두 사람을
언제까지라도 헤어지지 않게 마술을 걸어두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던 여인이 철중을 힐끗 처다 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나이를 먹게 되면 안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점점 확신을 잃고 실망이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건 현실이 아닌 픽션입니다.”
여인이 붓을 물에 헹구는 동안에
철중이 빠르게 답을 했다.
“픽션은 현실을 기초해서 창조 된 것 아닌가요?”
“...”
철중이 바라보는 여인은 짙은 보라색에 약간의 흰색을
첨가하면서 철중을 천천히 살폈다.
크고 검은 눈동자에 도발적인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 아래로 목선을 타고 V자형으로 파진 곳에
우유 빛 피부가 보였다.
철중은 뇌쇄적인 여인의 네크라인에 정신을 빼앗겼다.
“외모로는 그림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그림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 하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철중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면서 스스로 놀랬다.
그림을 그리는 여동생이 있다는 철중의 말을 듣고 난 여인은
긴장을 풀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림과 사랑은 쉽게 만들어 지는 가벼운 것이 아니죠.
“그림과 사랑은 절대로 거저 얻어지지 않는 답니다.
그림과 사랑은 거저 얻는 게 아니라, 노력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조금 전 알라딘과 자스민의 사랑을 이야기 하셨죠.
그림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랍니다.“
여인은 물감이 마른 것을 확인하고 짙은 푸른색과 보라색
가장자리에 흰색을 섞은 보라색을 살짝 덧입혀 바람에
양탄자가 날아오르려고 일렁이는 모습을 창조해냈다.
“사람들은 좋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작가의 숨은 의도나 주인공의 깊은 마음을 못 보는 거죠.
더 사랑해주지 못했고...
더 이해해주지 못했고...
더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모르는 채
좋고 아름다운 것만 보려고 한답니다.“
여인은 말을 멈추고,
그림에 집중한다.
흰색이 입혀지고 노량색이 입혀지고
맑고 밝은 알라딘과 공주의 모습이 그려졌다.
램프가 황금색으로 빛을 밝혔다.
철중은 그림속 주인공 둘이 함께 늙어 가리라 생각한다.
철중은 눈앞에 펼쳐진 그림에 취한다.
지신도 모르게 보고 있는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상상 속에 펼쳐진 그림에서는 알라딘과 자스민은 없다.
그림 그리는 저 여인과 내가 주인공이 되어 함께 늙어 간다면...
그림은 마술이 되어
철중을 사로잡아 엉뚱한 꿈을 꾸게 한다.
그림에 열중하는 여인이 더 이상 말이 없자 철중은
카페에서 들고 나온 커피를 여인의 물감 옆에 놓았다.
“햇살이 강 한데 수고 하십시오.
이것은 저 카페에서 지금 사 가지고 나온 그대로입니다. 드십시오.“
철중을 쳐다보는 여인은 긴 갈색머리에 커다란 검은 눈동자를
껌뻑이더니 다시 색감을 입히는 작업에 몰입 했다.
골목을 들어서면서 문이 열린 이집 저집을 들여다보았다.
며칠 전 여인을 만났으면 하는 막연한 발길을 한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카페 쪽으로 오자 벽화가 완성되어 있었다.
빈 커피 잔을 높이 들어 보이는 여인이
철중에게 고맙다는 표현으로 천천히 목례를 했다.
철중도 고개를 조금 숙여 답례를 하고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억지로 운전을 하고 형사과로 들어섰는데
몸이 한쪽으로만 쏠리면서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