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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뷔

文奉志洪 2 150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한
뭉크미술 원장님이 보내주신 작품입니다.

아서라. <**연재소설**>
지은이 : 文奉志洪

제 23 화 : 데자뷔

“어쩌면 이 사건에 처음부터 관여하지 말아야 했다는
후회를 할 걸세.“

“내가 한 이야기는 내 아들이 관여 된 것을 바로 잡지 못한
지난날을 후회하기 때문이지만 자네는 파헤친 것을 후회할 까봐 두렵네.
그리고 포기 할 건지,
자네 능력으로 모든 것을 밝혀야 할 건지는
자네가 결정하고 책임 질 문제가 되는 거네.“

철중은 달리는 차 안에서 오회장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15년 전에 일어난 살인사건은 자신의 아빠와 엄마가
연결된 사건이 분명했다.

오창 톨게이트를 지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뉴스가 라디오에서
나왔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로운 천년, 새로운 만남, 새로운 출발이라는 문구를
아나운서가 계속 말하면서 21세기에 들어 처음 열리는
전 세계인의 축제라는 말도 들리지 않았다.

월드컵 사상 첫 우승을 꿈꾸며 예선 첫 경기를 항도 부산에서
펼친다는 이야기도 전혀 관심이 없다.

시간은 강물처럼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졌지만,
현실에서 그리움에 마음 조이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도록 운명 지워진
여인을 만났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잃어버린 반쪽이 있고,
그 흔적이 우리의 육체와 영혼 어딘가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만났다. 혜란을...
다시 헤어졌지만 혜란과 나의 영혼은 다시 만날 것이다.

혜란이와 함께 바라보던 석양은 그토록 아름답고
세상 무엇보다 장엄하게 느껴졌었다.
지금은 펼쳐진 황혼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감흥도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혜란이로 인하여 아름답게 보였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사느냐 하는 문제가 철중을 괴롭혔다.

2002년 5월 31일~6월 30일 한국과 일본에서 개최되는
월드컵 일정을 밝혔다.
부산에서 개최될 공식 시합은 6월 2일[일요일] 오후 4시 30분
파라과이 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기,

6월 4일[화요일] 저녁 8시 30분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
6월 6일[목요일] 저녁 8시 30분 프랑스 대 우루과이의
본선 1차전 경기를 이야기 소개하면서 사상 첫 우승을 가자면서
환호하는 아나운서 방송이 계속 나왔다.

연일 힘든 근무에도 세기의 스포츠를 찾아보고
주말 야구를 보려고 서울과 부산을 찾을 정도로 스포츠에 몰입한
두 사람이었지만 지구촌 축제를 떠드는 방송에  아무 반응이 없다.

“연형사, 우리 집으로 가자.”
“네”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사직동 좁은 골목에 들어서서 철중의 집 담에 차를 주차시키고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잔디밭 옆으로 계절을 앞선 각종 들국화와
올망졸망 작은 꽃들이 바람에 살랑이며 두 사람을 반겼다.

달수는 500평이 넘는 정원에 감탄을 하면서 배고픈 자신과 달리
아버지를 잘 만나 돈 걱정 없는 놈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출입문 앞에 선 돈 많은 놈이 “번호가 1212 외울 수 있지.”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길고 큰 책상이 정면에 있고 옆으로 압정이 꽂힌 사진이
벽 보드에 붙어 있다.
그 앞에는 하얀 칠판에 각종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다.

한쪽 편에는 벽을 바라보는 그림들이 액자에 갇혀
줄지어선 느낌을 들게 했다.

대체로 갈색 톤으로 장식된 방은 밝은 조명으로 인하여
신선함을 전달하고 있었다.

접혀있는 의자를 가져와 펴면서
“우선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 좀 하자.”

테이블에 있는 커피포트에 스위치를 넣고
철중은 책상 옆에 있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달수를 주고
자신은 생수를 따 마셨다.

맥주를 마시면서 수사본부상황실을 느끼게 하는 방을
천천히 살피면서 칠판에 적힌 이름들을 익혔다.

10명이 넘는 이름 중에서 <차영란> 이라는 이름만 낯설었다.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탄 철중이 달수를 마주보며 앉았다.

“사진과 칠판에 적힌 이름 그리고 시간과 날짜 자네가 본
보고서와 거의 일치 할 걸세.“

“빠르게 다시 내가 정리 할 테니, 듣고 질문해 보게.”

15년 전에 3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 모두는 검지와 중지가 잘라져 있었다.
빠르게 수사본부를 꾸렸다.
여수로 출장 간 팀이 단서를 찾는 가 했는데,
서장이 경질되면서 수사본부장이 화성 살인 사건의 책임자로
발령이 나면서 수사본부가 해체되었다.

해체되는 과정에 아빠의 지인이 나타나 철중에게 사건에서
손 떼라는 묘한 이야기를 했다.
제대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과정에서
오래전에 알던 연주라는 동생과 혜란을 만난다.
갑자기 두 여인이 사라지면서 철중이 여인을 찾기 위한 공조수사를
바랬지만 가족이 실종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철중이 여인의 실종이 손가락 살인사건과 관련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수사를 고집하는 과정에 혜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혜란의 차에 치여 사망했고 철중이 용의자가 되었었다.

철중이 절망에 빠져
술에 의존하면서 살인 사건이 시간 속에 묻혔다.

동기인 연기준이 서장이 되고 나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15년 전의 살인 사건과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검지와 중지가 절단 되었고, 그 손가락이 유족에게
택배로 전달되었다.

목에는 천년이 차 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라는
글귀가 코팅되어 걸려 있다. 라고 철중은 짧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달수가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시간과 날짜 그리고 사건과 연결된
사람들의 이름이 저기 적혀 있는 거군요.“

“낯익은 이름들인데 딱 한 사람 차영란 이라는 분은?”

“지금부터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첫 번째 단서일세.”

“아까 만난 오회장이 아빠의 지인이며,
자네와 내게 저 이름과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네.“

“한 번도 못 본 분이지만....“

“저 이름은 내 어머니 이름이라고 오회장과 내 아버지가 말했네.”

“선배의 어머니 라구요?“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 다른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학교 가는 모습이 부러워
아빠에게 딱 한 번 물어 보았다네.”

“아빠, 난 왜 엄마가 없어.”

“엄마가 헤어지자고 했단다.”

“엄마 이름이 뭐에요.”

“차영란”

철중은 아버지가 곧 어둠이 밀려와
황혼의 아름다운 빛이 서산 너머로 사라지고 나면...
다시는 영영 볼 수 없다는 절망의 표정으로 말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천천히 일어나 책상 서랍을 열고 서류 하나를 달수에게 주었다.
달수가 펼쳐보니 호적등본 이었다.

청주 고아원 원장 강용필 자제로
강시중, 강세종, 강주성, 강소영의 이름이 있었다.
같은 날 입양한 관계로 나이와 생일이 쌍둥이처럼 모두 같았다.

등본 어디에도 차영란 이라는 이름은 없고
세대주 강세종 이름 아래에 처 이영주라고 적혀있다.
이름 옆에 사망신고는 철중의 출생신고 6개월 후로 되어 있다.
더구나 여인은 강세종 보다 나이가 무려 28살이나 많았다.

달수가 질문을 하기 전에 철중이 먼저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사망신고를 하고 나서 기준이 ...아 ~ ~
자네 삼촌의 아버지가 나서서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이 집을 내 앞으로 상속 변경해 주셨네.“

“고2로 처음 호적등본 이라는 것을 보았지.
그리고 수없는 날을 방황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영주 인데...
아버지는 엄마의 이름을 왜 차영란 이라고 했을 가?를 생각했지.
이혼은 뭐고? 아빠 엄마의 나이차이는 왜 이리 많은 건지를
시간만 나면 고민하면서 오늘까지 해답을 찾지 못했네.“

“자네는 내일 이 주소를 시작으로 이영주의 연고자를 찾아보고
차영란 이라는 이름을 추적해서 가능한 면담을 하게.
난 다시 여수로 가 연주의 연고지를 더듬어 볼 생각이네.“

철중의 전화기가 울렸다.
“나야, 말해.”
“수고했어. 그게 사실이지 ”

철중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달수가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어느 여인이 내 친구 cjb 기자가 했던 말처럼
공중전화로 정신병원부터 시작하라는 전화를 했다고 말한 적 있지.
그 전화기에서 연주의 지문이 나왔다네.“

철중은 연주의 집에서 연주의 지문을 떠 파일에 올리고
사진과 함께 실종신고를 했었지만,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철중은 연주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도 못 알아보더니
며칠 전 통화하면서 목소리조차 감지하지 못 한 것을
생각하니 자신이 과연 이 사건을 해결 할 능력은 있는 것인가 하는
자학과 자책에 얼굴이 상기 되었다.

의문의 여인이 전화를 끊지 않아 추적하여 도착한 곳은
조치원역 공중전화 박스였다.
지문 감식 반은 철중의 의뢰로 공중전화에 도착하여 선명한
30명의 지문을 확보하고 대조한 결과 특이한 징후의 지문은 없었다는
보고와 함께 연주의 지문을 확인했다고 했다.

처음 강력계로 발령이 났을 때부터
철중은 지문식별 방법을 좋아하게 되었다.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속이려고 행동이나 말을 꾸미는 것에 반해
지문은 거짓 진술과
눈치를 보지 않고 인간 본연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강력사건 때마다 수집한 지문들을 지도처럼 펼쳐놓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느낌과 탐문에 대한 내용을 비교 분석했다.

지문도 작은 불록처럼 수 백 개 나열되고 뭉치면 서로 어우러져
무한한 창조물로 거듭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 좋았다.

지문은 자궁 속에서 모체가 전하는 갖가지 사소한 이야기라도
잊지 않으려고 손가락에 받아 적듯이 새긴 것은 아닌가 하는
매력에 더욱 끌렸다.

임신 기간 중에 일어난 미묘한 작은 선들이 흐트러짐 없이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의 몸에 남아 평생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인간이 숨기지 못하고 가지고 태어나는 선악의 경이로움 이라고 믿었다.

철중은 혜란의 차를 폐차장으로 옮기는
중에 오른쪽 문손잡이 에서 나온 의문의 지문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라고 믿어왔다.

지문을 신뢰하는 자신에게 연주는 혜란과 달리 살아있다는
증거를 전달함으로서 자신을 찾으라고 말 하는 거다.
더구나 경찰서로 온 전화가 아니고 자신의 휴대폰으로 건 걸
보아도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연주는 누군가를 피해 있는데 자신에게 나타나서는 안 되는
상황인 거다.

다음날 달수는 철중의 본적 주소지강경 채산리로
철중은 연주의 본적 주소지여수 돌산리로 향했다.

* 차영란

6.25가 끝나고 읍장 일을 보던 차태식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무연고 논과 밭 산을
본인의 명의로 등록하여 충청도 일대에서 땅 부자로 알려졌다.

태식은 두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나서 무지개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끝 부분에서 오색영롱한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돌이 있어 집으로 가져 와 붉고 노란색과 청색 초록 흰색의
빛을 바라보며 지내는 꿈을 꾸고 난 후에 막내아들과
22살 터울 진 늦둥이 딸을 낳았다.

하지만 노산으로 인하여 부인을 잃었다.

우수에 찬 눈망울에 높은 콧대 갸름한 턱 선에
흰 네크라인은 마치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 잉그리드버그만을
닮았다는 말을 듣게 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애지중지 하며 귀여워하던 딸은
3살에 한글을 읽히고 덧셈 뺄셈을 하면서
영득함을 보이더니 유독 색감에 민감했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도레미파를 흰색, 회색, 노랑, 초록에 비유했다.
청주 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림에 재능을 나타냈다.

짙고 옅은 먹그림의 신사임당 포도 그림을 보고
젊고 싱싱한 색감으로 재탄생 시켜 그림 선생님의 감탄을 자아내며
초등부 전체 대상을 차지했다.

검은 먹그림을 물감으로 밀도와 높낮이가 다르게 채색했다.
각기 다른 포도의 층을 화려하지도 않은 보라와 청 그리고 푸른
색으로 빛의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게 했다.

청주 여자 중학교에 입학하여 신사임당의 원화석죽
(원추리꽃과 패랭이꽃)을 모사하여 국무총리 상을 받았다.

태식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딸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운전수와 비서를 고용하고도 부족해 초등학교 6년을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친구로 지낸 태권도 충청도 대표인
강세종에게 용돈을 주면서 딸과 늘 동행하게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경기 고등학교에 진학한 영란은
자신의 재능을 멀리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s대 법대에 진학을 하고 같은 또래의 세종은
청주 공립고등학교를 거쳐 용인대체육학과에 입학을 했다.

S대학 신입생신고식 자리에서 선배들이 따라주는 술을 거절하지 못해
신입생 모두는 버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 선배가 자신의 고무신에 막걸리를 따라주며 마시라고 하자,
이기회라는 동기가 고무신을 집어 던지면서 이런 작태는
이제 버려야 한다고 소리를 질러 싸움이 일어났다.

놀라운 것은 어찌나 주먹질을 잘 하고 몸이 날랜지 선배들
20여명이 한명을 당하지 못하고 얻어맞더니 도망들을 갔다.

동기들 수 십 명이 박수를 치고 나서 주변을 청소하고
희망자 서너 명만 남아 맥주를 마셨다.

영란과 마주 앉은 기회는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말과 함께
여수에서 각종 말썽을 부리는 싸움꾼이라는 말을 하며
동생을 지키기 위해 법관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영란은 취기가 오르자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 하는 아이가 있는데
고아며 아버지가 자신을 보호하라고 고용한 보디가드라는 말을 했다.

자신이 법관이 되려는 것은 아버지처럼 돈으로 사람을 기만하는
것을 묵과하기 싫어서라는 말을 하면서,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다는 사람들과 맞서 싸우고 싶다고 했다.

영란은 타고난 미술재능에 이어 피아노 실력도 출중했다.
대학 축제에서 6인조 밴드로 1등을 한 유명세를 타면서
3사 방송에 출연도 했다.

유명세를 타자 각 대학마다 미팅을 하자는 제안이
끝도 없이 들어왔지만 도도한 영란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법대 2학년이 되어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상큼 발랄한 영란의 모습은 교정에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2 Comments
스토리장 03.27 08:20  
오늘 아침 뉴스에는 9일이 지났는데도 꺼지지 않는 산불로 25명이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데자뷔라는 소제목처럼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소중한 인명을 구하는 장면으로 바뀌지 않을 가?하는
슬픈 상상을 합니다.지나고 나면 과거 속 기억으로 멀어져 가겠지요.
文奉志洪 03.27 08:48  
최근의 슬픔을 가슴에 새겨도 시간이 가면 조금씩 잊혀져 가는 것이 삶이겠지요만
어찌 잊혀지겠습니까?돌아갈 수 없는 생이기에 지난 시간과 시절이 더욱 간절할 겁니다.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고 내게 주어진 기회를 100% 활용하기도 쉽지 않죠.
오늘은 선택하지 못한 삶을 살다 가신 분을 위한 추모의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그림과 같은 온유한 사랑이 가득 피어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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